고전읽기 대학

2016년 2월 5일 오전 09:40

생사람 2016. 2. 5. 09:42

고전 대학읽기 - 4일차 -


04-01 子曰 聽訟 吾猶人也 必也使無訟乎 無情者不得盡其辭 大畏民志 此謂知本
자왈 청송 오유인야 필야사무송호 무정자부득진기사 대외민의 차위지본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訟事를 다스림이 내 남과 같이 하나, 반드시 백성들로 하여금 訟事함이 없게 하겠다.’ 하셨으니, 實情이 없는 자가 그 거짓말을 다하지 못하게 함은 백성의 마음을 크게 두렵게 하기 때문이니, 이것을 일러 근본을 안다고 하는 것이다.

○ 猶人不異於人也 情實也 引夫子之言 而言聖人 能使無實之人 不敢盡其虛誕之辭 蓋我之明德旣明 自然有以畏服民之心志 故訟不待聽而自無也 觀於此言 可以知本末之先後矣
猶人은 남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情은 실제이다. (무정자 : 실이 없는 , 진실치 못하고 헛된 말을 하는 자)夫子의 말씀을 인용하여, 성인이 능히 실제가 없는 사람으로 하여금 감히 그 虛誕한 말을 다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자신의 명덕이 이미 밝아져서 자연히 백성들의 心志를 두렵게 하고 복종시킴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송사를 다스리기를 기다리지 않고도 저절로 없어짐을 말한 것이다. 이 말씀을 본다면 本末의 先後를 알 수 있을 것이다. * 其辭 : 무정자가 말하는 원고 E는 피고로서의 헛된 말.

○ 右傳之四章 釋本末
右는 傳文의 4章이니 本末을 해석하였다.

○ 此章 舊本誤在止於信下
이 章은 舊本에 잘못되어 止於信 아래에 있었다.

04-02 (此謂知本)
차위지본
이것을 일러 근본을 안다고 하며,

○ 程子曰 衍文也
程子가 말하기를 “衍文[불필요한 글자가 어떤 이유로 섞여 들어온 것] 이다”

05-01 此謂知之至也
차위지지지야
이것을 일러 지식이 지극하다고 하는 것이다. [이 장은 대학 고본에 이렇게만 되어 경문 맨 끝에 붙어 있던 것을 주자가 착간으로 보고 전문의 자리에 옮겨 놓으면서 없어진 것으로 추측되는 글을 만들어 붙였다. ]

○ 此句之上別有闕文 此特其結語耳
이 句의 위에 별도로 빠진 글이 있고, 이것은 다만 그 결론한 말일 뿐이다.

○ 右傳之五章 蓋釋格物致知之義而今亡矣
右는 傳文의 5章이니, 格物 · 致知의 뜻을 해석하였는데, 이게 없어졌다.

○ 此章 舊本通下章誤在經文之下
이 章은 舊本에 아랫 章을 통하여 잘못되어 經文의 아래에 있었다.

○ 間嘗竊取程子之意 以補之 曰所謂致知在格物者 言欲致吾之知 在卽物而窮其理也
간상절취정자지의 이보지 왈소위지지재격물자 언욕치오지지 재즉물이궁기리야
蓋人心之靈 莫不有知 而天下之物 莫不有理 惟於理有未窮 故其知有不盡也 是以大學
개인심지령 막불유지 이천하지물 막불유리 유어리유미궁 고기지유부진야 시이대학
始敎 必使學者 卽凡天下之物 莫不因其已知之理而益窮之 以求至乎其極 至於用力之
시교 필사학자 즉범천하지물 막불인기이지지리이익궁지 이구지호기극 지어용력지
久而一旦豁然貫通焉 則衆物之表裏精粗 無不到 而吾心之全體大用 無不明矣 此謂物
구이일단활연관통언 즉중물지표리정조 무부도 이오심지전체대용 무불명의 차위물
格 此謂知之至也
격 차위지지지야
근간에 내 일찍이 程子의 뜻을 슬며시 취하여 빠진 부분을 다음과 같이 보충하였다. “이른바 앎을 투철히 함이 사물의 이치를 궁구함에 있다는 것은, 나의 지식을 투철히 하고자 한다면 사물에 맞이하여 그 이치를 궁구함에 있음을 말한 것이다. 인심의 영특함은 앎이 있지 않음이 없고, 천하의 사물은 이치가 있지 않음이 없건마는, 다만 이치에 대하여 궁구하지 않음이 있기 때문에 그 앎이 다하지 못함이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대학에서 처음 가르칠 때에 반드시 배우는 자들로 하여금 모든 천하의 사물에 나아가서 그 이미 알고 있는 이치를 의지하여 더욱 그것을 추구에 나아가 極에 이름을 구하지 않음이 없게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힘쓰기를 오래해서 하루 아침에 豁然히 관통함에 이르면, 모든 사물의 表裏와 精粗가 이르지 않음이 없을 것이요, 내 마음의 전체와 大用(全體大用 :마음의 모든 이치를 갖추고 있는 본체와 그의 작용)이 밝지 않음이 없을 것이니, 이것을 物格이라 이르며, 이것을 知之至라 이른다.”--- [ 이것이 유명한 格物致知에 대한 주자의 格物補傳이라 부르는 것이다. ]
*間嘗 : 근간에

06-01 所謂誠其意者 毋自欺也 如惡惡臭 如好好色 此之謂自謙 故君子必愼其獨也
소위성기의자 무자기야 여오악취 여호호색 자치위자겸 고군자필신기독야
이른바 그 뜻을 성실히 한다는 것은 스스로 속이지 마는 것이니, 악을 미워하기를 악취를 미워하는 것과 같이 하며, 선을 좋아하기를 호색을 좋아하는 것과 같이 하여야 하니, 이것을 自慊(스스로 족하다, 안정되다)이라 이른다. 그러므로 군자는 반드시 그 홀로를 삼가는 것이다.

○ 誠其意者自修之首也 毋者禁止之辭 自欺云者知爲善以去惡 而心之所發 有未實也 謙快也 足也 獨者人所不知而己所獨知之地也 言欲自修者知爲善以去其惡 則當實用其力 而禁止其自欺 使其惡惡則如惡惡臭 好善則如好好色 皆務快去而求必得之 以自快足於己 不可徒苟且以徇外而爲人也 然 其實與不實 蓋有他人所不及知而己獨知之者 故 必謹之於此 以審其幾焉
그 뜻을 성실히 하는 것은 自修의 첫 머리이다. 毋는 금지하는 말이다. 自欺는 선을 하고 악을 제거해야 함을 알되, 마음의 발하는 바가 성실하지 못함이 있는 것이다. 謙은 快함이며, 만족함이다. 독은 남은 알지 못하고, 자기만이 홀로 아는 바의 곳이다. 스스로 닦고자 하는 자는 선을 하고 악을 제거해야 함을 알았으면, 마땅히 실제로 그 힘을 써서 自欺함을 금지하여, 가령 악을 미워함에는 惡臭를 미워하는 것과 같이 하고, 선을 좋아함에는 호색을 좋아하는 것과 같이 하여, 모두 힘써 결단하여 버리고, 구하여 반드시 얻어서 스스로 자기에게 만족하게 할 것이요, 한갓 구차히 외면을 따라 남을 위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성실하고 성실하지 못함은 남은 미처 알지 못하고 자기만이 홀로 아는 데 있다. 그러므로 반드시 이것(홀로)을 삼가 그 幾微를 살펴야 함을 말씀한 것이다.

06-02 小人閒居 爲不善 無所不至 見君子而后 厭然揜其不善 而著其善 人之視己 如見其肺肝
소인한거 위불선 무소부지 견군자이후 엄연엄기불선 이저기선 인지시기 여견기폐간
然則何益矣 此謂 誠於中 形於外 故 君子必愼其獨也
연즉하익의 자위 성어중 형어외 고 군자필신기독야
소인이 한가로이 거할 때에 불선한 짓을 하되 이르지 못하는 바가 없다가, 군자를 본 뒤에 겸연쩍게 그 불선함을 가리우고 선함을 드러내나니, 남들이 자기를 보기를 자신의 肺腑을 보듯이 할 것이니, 그렇다면 무슨 유익함이 있겠는가. 이것을 일러, ‘중심이 정성되면 외면에 나타난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군자는 반드시 그 홀로 있을 때를 삼가는 것이다.

○ 閒居獨處也 厭然消沮閉藏之貌 此言小人陰爲不善 而陽欲揜之 則是非不知善之當爲 與惡之當去也 但不能實用其力以至此耳 然欲揜其惡而卒不可揜 欲詐爲善而卒不可詐 則亦何益之有哉 此君子所以重以爲戒而必謹其獨也
閑居는 홀로 거처하는 것이다. 厭然은 消沮[은밀히]하여 은폐하고 감추는 모양이다. 이는 소인이 속으로 불선을 하고 겉으로 이것을 감추고자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선을 마땅히 해야 함과 악을 마땅히 제거해야 함을 알지 못하는 것이 아니로되, 다만 실제로 그 힘을 쓰지 못하여 이에 이른 것이다. 그러나 그 악을 가리우고자 하여도 끝내 가리우지 못하고, 거짓으로 선을 하고자 하여도 끝내 속일 수가 없으니, 그렇다면 또한 무슨 유익함이 있겠는가. 이는 군자가 거듭 경계하여 반드시 그 홀로 있을 때를 삼가는 까닭을 말씀한 것이다.

06-03 曾子曰 十目所視 十手所指 其嚴乎
증자왈 시목소시 십수소지 기엄호
曾子께서 말하기를 ‘열 눈이 보는 바이며, 열 손가락이 가리키는 바이니, 그 무섭구나!’

○ 引此以明上文之意 言雖幽獨之中 而其善惡之不可揜 如此 可畏之甚也
이것을 인용하여 윗 글의 뜻을 밝힌 것이다. 비록 幽獨의 가운데라도 그 선악의 가리울 수 없음이 이와 같으니, 두려울 만함이 심함을 말씀한 것이다.

06-04 富潤屋 德潤身 心廣體胖 故君子必誠其意
부윤옥 덕윤신 심광체반 고군자필성기의
富는 집을 윤택하게 하고, 德은 몸을 윤택하게 하니, 덕이 있으면 마음이 넓어지고 몸이 펴진다. 그러므로 군자는 반드시 그 뜻을 성실히 하는 것이다.

○ 胖安舒也 言富則能潤屋矣 德則能潤身矣 故心無愧怍 則廣大寬平 而體常舒泰 德之潤身者然也 蓋善之實於中而形於外者如此 故又言此以結之
胖은 편안하고 펴짐이다. 부하면 능히 집을 윤택하게 하고, 덕이 있으면 능히 몸을 윤택하게 한다. 그러므로 마음에 부끄러움이 없으면 廣大하고 寬平하여 몸이 항상 펴지고 편안하니, 덕이 몸을 윤택하게 함이 그러한 것이다. 善이 中心에 誠實하여 外面에 나타남이 이와 같다. 그러므로 또 이것을 말씀하여 맺은 것이다.

○ 右傳之六章 釋誠意
우는 전문의 6장이니, 성의를 해석하였다.

○ 經曰 欲誠其意 先致其知 又曰知至而后意誠 蓋心體之明 有所未盡 則其所發 必有不能實用其力 而苟焉以自欺者 然或已明而不謹乎此 則其所明 又非己有 而無以爲進德之基 故此章之指 必承上章而通考之然後 有以見其用力之始終 其序不可亂而功不可闕如此云
經文에 이르기를 ‘그 뜻을 성실히 하고자 한다면 먼저 그 지식을 지극히 하라’ 하였고, 또 말하기를 ‘지식이 지극한 뒤에 뜻이 성실해진다’ 하였으니, 心體의 밝음이 未盡한 바가 있으면 그 발하는 바가 반드시 실제로 그 힘을 쓰지 못하여 구차하게 스스로 속임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혹 이미 밝게 알았다 하더라도 이것을 삼가지 않으면 그 밝힌 것이 또 자기의 소유가 아니어서 덕에 나아가는 기초로 삼을 수 가 없다. 그러므로 이 장의 뜻은 반드시 윗 장을 이어서 통틀어 상고한 뒤에야 힘을 쓰는 시와 종을 볼 수 있으니, 그 순서를 어지럽힐 수 없고, 공부를 빠뜨릴 수 없음이 이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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