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참사..14명 숨진 이탈리아 케이블카 추락 사고 ...정상 100m 남기고 '뚝'.. 종잇장처럼 구겨져
김정화 입력 2021. 05. 25. 05:07 수정 2021. 05. 25. 09:26
와이어 끊어지고 비상 브레이크 먹통
미끄러져 내려오다 철탑과 충돌한뒤 추락
14명 숨지고 5세 어린이 중상 등 참변
추락사고로 13명 숨진 이탈리아 케이블카 - 23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북부 피에몬테주 스트레사 마타로네산의 케이블카 추락사고 현장에서 구조대가 구조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 사고로 최소 13명이 숨지고 2명의 어린이가 크게 다쳤다. 이 케이블카는 유명 관광지인 마조레 호수의 절경을 한눈에 볼 수 있어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많다. [제3자 제공] 스트레사 AP 연합뉴스 2021-05-24
이탈리아 북부 피에몬테주에서 케이블카가 추락해 10여명이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다. 그동안 코로나19로 1년 이상 멈춰 있다가 최근 정부의 방역 규제 완화에 따라 운행을 재개했는데, 이 같은 날벼락이 떨어져 더 큰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ANSA 통신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23일(현지시간) 마조레 호수를 낀 피에몬테주 스트레사 시내에서 1491m 높이의 마타로네산 정상까지 운행되는 케이블카가 정상 도착 직전 추락하는 일이 벌어졌다. 정상을 약 100여m 남겨 놓고 갑자기 주케이블이 끊어진 여파로 몇 미터 후진한 케이블카가 연이어 철탑에 부딪힌 뒤 보조케이블에서마저 이탈해 아래로 추락했다. 케이블카 관계자는 “20m 높이에서 떨어진 케이블카가 나무에 부딪혀 멈추기 전까지 몇 차례 굴렀으며, 완전히 구겨져 있었다”고 사고 현장의 모습을 전했다.
이 사고로 9세 어린이 등 최소 14명이 숨졌고 5세 어린이 한 명도 크게 다쳤다. 케이블카의 탑승 정원은 40명 정도인데 코로나19 거리두기 등으로 수용 인원이 적었던 것으로 보인다. 케이블카가 추락한 곳이 경사가 급한 산림지역이라 구조대원들이 접근하기에 어려움도 컸다.
유명 관광지인 마조레 호수의 절경을 한눈에 볼 수 있어 관광객과 스키어들에게 인기가 많은 이 케이블카는 1970년 8월 처음 운행을 시작했고 2014~2016년 전체 정비, 보수 작업이 이뤄졌다. 출발지에서 정상까지 걸리는 시간은 약 20분이다. 케이블카는 코로나19 규제 때문에 그동안 계속 운행하지 않다가 지난달 24일 재개됐다. 이탈리아는 지난 16일엔 외국인 관광객의 입국을 허용하기도 했다.
당국은 주케이블이 끊어진 원인 및 주케이블이 끊어졌을 때 케이블카의 후진을 막기 위해 작동해야 했던 비상 브레이크가 작동하지 않은 경위를 조사 중이다. 마리오 드라기 총리는 성명을 내고 “비극적인 사고 소식을 접하고 슬픈 마음을 금할 수 없다”면서 “정부를 대신해 희생자 가족에게 애도를 표하며 부상한 어린이와 그 가족에게도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드라기 총리는 24일 인프라 장관을 비롯한 정부 관계자를 급파해 사고 경위를 파악하는 한편 사망·부상자 지원책을 마련하도록 할 방침이다.
추락한 케이블카의 처참한 모습. [AFP=연합뉴스]
(로마=연합뉴스) 전성훈 특파원 = 이탈리아 당국이 14명의 목숨을 앗아간 케이블카 추락 사고 원인 규명에 착수한 가운데 시간이 지나면서 사고 당시 긴박했던 상황이 조금씩 구체화하고 있다.
24일(현지시간) 관계 당국의 발표와 목격자 진술 등을 토대로 사고 상황을 재구성해보면 전날 정오께 마조레 호수를 낀 피에몬테주 스트레사 시내에서 케이블카 한 대가 1천491m 정상을 향해 출발했다.
당시 케이블카에는 관광객 15명이 탑승한 상태였다. 탑승 정원(35∼40명)의 절반을 약간 밑도는 수다.
케이블카는 출발 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큰 문제 없이 정상을 향해 나아갔다. 그러다 목적지를 약 100여m 남겨놓고 갑자기 와이어에 문제가 생기면서 상황은 돌변했다.
주 케이블이 끊어지며 케이블카가 뒤로 후진했고 이어 철탑에 부딪힌 뒤 보조케이블에서도 이탈해 아래로 추락했다. 케이블카는 이후 2∼3바퀴를 구른 뒤 나무와 충돌하고서야 멈춰 섰다.
파손된 추락 케이블카에서 인명 구조 작업을 벌이는 소방대원들. [AFP=연합뉴스]
이 충격으로 탑승객 상당수는 케이블카 밖으로 튕겨 나갔다. 현장에서 시신을 수습한 산악구조대원에 따르면 탑승객 중 5명만 케이블카 안에 있었고, 나머지는 모두 산비탈 나무 사이에서 발견됐다.
와이어가 끊어진 직후 케이블카의 비정상적인 이동을 제어하는 비상 브레이크는 작동하지 않았다고 한다.
산악구조대 관계자는 "와이어 파열과 비상 브레이크 미작동이라는 두 가지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한다"면서 "비상 브레이크가 작동하지 않은 원인은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사고 당시 반대쪽에서 하강하던 케이블카가 비상 브레이크 작동으로 멈춰선 점을 고려하면 사고 케이블카에 기기적 결함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 수사당국은 케이블카 운행 지역 출입을 전면 통제하고서 사고 원인 조사에 들어갔다. 일단은 유지·보수 부실 등에 따른 과실치사 혐의에 무게를 두고 있다.
중앙정부도 관련 전문가들로 특별조사위원회를 꾸려 원인 파악에 나섰다.
사고 케이블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정부 규제로 1년 이상 멈춰있다가 최근 운행을 재개했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사고 지역에서 생존자를 수색하는 소방대원들. [EPA=연합뉴스]
최초 운행은 1970년 8월이며, 2014∼2016년 2년에 걸쳐 대대적인 유지·보수 작업이 있었다. 와이어에 대한 정밀 점검은 작년 11월이 마지막인 것으로 파악됐다.
유지·보수 업체는 케이블카 운영 재개 전 전반적인 점검을 진행했으며, 여기서 특별한 문제가 드러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이번 사고로 2세 영아와 6세·9세 어린이를 포함해 5가족 총 14명이 숨졌고, 유일하게 생존한 5세 남자 어린이는 머리와 가슴, 복부, 다리 등에 중상을 입고 병원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사망자 중에는 이스라엘계 일가족 5명과 이탈리아 남부에 거주하는 이란계 20대 방문객 1명도 포함돼 있다.
살아남은 어린이는 이스라엘계 가족의 일원이다. 이 아이는 이번 사고로 두 돌을 갓 넘긴 남동생과 부모를 한꺼번에 잃었다.
사고 소식에 슬퍼하는 유족. [EPA=연합뉴스]
유럽에서 케이블카 사고가 발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AFP 통신에 따르면 2005년 9월 오스트리아 티롤의 한 스키 리조트 인근 상공을 지나던 헬기에서 무게 800㎏의 콘크리트가 떨어져 케이블카를 덮쳤고 이로 인해 독일인 관광객 9명이 숨졌다.
또 1998년 2월에는 저공 비행하던 미군 항공기가 이탈리아 돌로미티 스키 리조트의 케이블을 절단하면서 20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해당 리조트에서는 1976년에도 강철 재질의 보조 와이어 파열로 케이블카가 추락해 42명이 사망하는 일이 있었다.
이탈리아 국민에게 이번 일은 3년 만에 다시 찾아온 대형 참사의 악몽이다.
앞서 2018년 8월 북서부 리구리아주 제노바를 관통하는 고속도로 구간 내 모란디 대교의 상판과 교각이 갑자기 무너져 43명이 숨진 바 있다.
당시 사고는 유지·보수 및 관리 부실이 원인인 것으로 잠정 결론났고, 사고 책임이 있는 업체 관계자는 전원 재판에 넘겨졌다.
현지 소비자보호단체 '코다콘스'(Codacons)는 AFP 통신에 이번 사고를 모란디 대교 붕괴와 열차 탈선, 크루즈선 조난 등에 이은 또 하나의 대형 참사로 지칭하며 "우리나라의 교통 안전 관련 시스템이 고장난 게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붕괴된 모란디 다리의 처참한 모습. 2018.8.15. [EPA=연합뉴스]
luc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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