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효인가?"란 논쟁을 낳았다는 효불효교 설화 .
사실 이 다리의 별칭은 '칠성교"등의 여러 이름이 존재한다.
처해있는 세월과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개념.
지금의 사회를 사는 우리는 과연 이것을 어떻게 보고,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
효불효설화(孝不孝說話) ?
구비문학작품 일곱 아들이 홀로 된 어머니를 위하여 다리를 놓는다는 내용의 설화.
이칭 효불효교전설, 경주칠교전설, 칠성교전설
분야 구비문학 유형 작품 성격 설화
창작년도 미상 작가 미상 관련지역 경상북도 경주시
경주시 인왕동 921-2번지 일대 남천의 하천바닥에 파묻힌 효불효교 유적에 대한 발굴작업을 벌여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다리 구조물 수백 개를 확인했다.
효불효교 전설1
갈래 : 전설 시대 : 삼국 신분 : 일반 지역 : 기타 출처 : 신증동국여지승람 (권21)
내용 :신라시대 일곱 아들을 데리고 사는 과부가 있었다. 이웃 마을에 사랑하는 정인(情人)이 있어서, 매일 밤 아이들이 잠든 사이에 몰래 빠져나가 정인을 만나 애정을 나누고 돌아왔다. 그런데 밤마다 정인을 만나러가는 길에는 중간에 큰 내가 있어서 맨발로 물을 건너야 했다. 일곱 아들이 이 사실을 알고 어머니의 물 건너는 고생을 덜어 드리려고, 그 내에 돌다리를 놓아 편하게 해 드렸다. 이에 어머니는 부끄러워하면서 그 좋지 못한 행동을 고쳤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 다리를 ‘효불효교’라 일컫는다.
효불효교 전설2
갈래 : 민담 시대 : 시대미상 신분 : 일반 지역 : 기타 출처 : 한국구전
내용 :옛날 한 사람이 늙은 어머니를 모시고 어렵게 살고 있었다. 한겨울에 어머니가 밤중에 슬그머니 나갔다가 새벽에 돌아오기를 매일같이 하였는데, 이를 이상하게 여긴 아들이 하루는 그 뒤를 밟게 되었다. 어머니는 한겨울에 다리도 없는 냇물을 맨발로 건너는 것이었다. 아들이 어머니의 뒤를 따라가 보니 냇물 건너 오두막에 사는 영감을 찾아가 밤을 지내고 오는 것이었다. 이에 아들이 어머니를 위해 물에 발을 담그지 않고 건널 수 있도록 다리를 놓았는데, 이 다리는 어머니에게는 효가 되지만 부친에게는 불효가 된다 하여 그 이름을 효불효교라 하였다.
개설
경상북도 경주 지역에서 전승되는 교량전설(橋梁傳說)로서, 효불효교전설(孝不孝橋傳說)·경주칠교전설(慶州七橋傳說)·칠성교전설(七星橋傳說)이라고도 한다. 『동국여지승람』 권21 경주 교량조에 수록되어 있고, 『한국구비문학대계』 경주 월성편에 2편이 채록되었는데, 각 편의 내용은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
내용
『동국여지승람』의 기록에 따르면, 효불효교는 경주부 동쪽 6리 되는 곳에 있는데, 신라 시대에 아들 일곱을 둔 홀어머니가 그 아들들이 잠든 틈에 남자를 만나러 다녔다. 그 아들들이 이 사실을 알고 서로 의논하기를 “어머니가 밤에 물을 건너다니시니 자식의 마음이 편하겠는가.” 하고 이에 돌다리를 놓았다. 어머니가 부끄럽게 여기고 야행(夜行)의 나쁜 버릇을 고쳤으니, 당시 사람들이 그 다리 이름을 효불효교라고 불렀다.
구전설화에는 이 다리를 일곱 아들이 놓았다고 해서 ‘칠성교’라고 하기도 하고, 일곱 개의 돌을 놓아 만든 다리이기 때문에 ‘칠성교’ 또는 ‘칠교’라고 한다고도 전한다. 또한, 어머니에게는 효성스러운 행위이나 돌아가신 아버지에게는 불효가 되는 일을 한 것이라 해서 ‘효불효교’라고 한다는 해석도 있다.
민간에 전하는 속신(俗信)에 자식 없는 여인이나 젖이 적은 여인이 이 다리의 교각(橋脚)에 빌면 반드시 영험이 있고, 또 짝사랑으로 고민하는 여인이 이 돌에 빌면 상대방에게 그 뜻이 전달된다는 전설도 전하고 있다.
우리는 과연 이 다리를 칠성교라 불러야 할까?
아니면
효불효교라고 불어야 하는가?
이 다리의 다른 이름은 일정교(日精橋), 월정교(月精橋), 춘양교(春陽橋), 칠성교(七星橋) 등이다.
‘칠성’이란 민간 칠성신앙과 연관이 있다. 북두칠성은 모든 별 가운데 가장 우리 민족과 친근한 별자리이다. 서양에서 북두칠성은 큰곰자리의 엉덩이 부분에 해당할 뿐이다. 풍요와 다산 그리고 장수에 관계된 별이 칠성이다. 그리고 ‘정’(精)은 정기신(精氣神) 가운데 가장 물질적이고 형이하학적인 것이다. 춘양도 남자의 정기와 관계된다. 효가 윤리적이고 형이상학적이라면 이들 다른 이름들은 그 반대란 말이다.
이 민간 전설에서 보면 일곱 아들이 이 다리의 주인공이 아니고, 정욕에 불탄 욕망 자체의 화신인 어머니가 주인공이다. 즉, 다산과 본능의 상징인 어머니의 모습 그대로를 받아들여 다리를 놓은 것으로 이야기는 아마 끝났을 것이다. 후대에 와서 부계중심의 사회가 형성되고 효의 의미도 그에 따라 고착되자, 아들들이 주인공이 되어 살아있는 어머니에게는 효도가 되나 돌아가신 아버지에겐 불효가 된다는 "효불효교"가 된 것은 후대의 덧붙임이리라, 더 나아가 이를 보고 자신의 행실을 반성한 어머니가 밤마실을 그만 둔다는 것은 더 후기에 덧붙여 졌으리라. 즉 , 충신 불사이군 열녀 불경이부 忠臣 不事二君 烈女 不更二夫 이라는 생각이 들어서고 나서야 이 민담내의 가치관 충돌을 해결하고자 각색이 이루어졌을 것이라는 개인적 추측이다.
그렇게 덧 붙여지는 과정에서 이 설화는 사회의 기본 윤리 강목이었던 효를 어떻게 해석하고 실천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제기한 자료로서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부계의 혈연이 강조되고 가문 보존이 최우선이던 조선조 사회에서 홀어머니의 밤 나들이는 인정될 수 없는 행위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어머니는 어머니이기 전에 한 인간이고 여인이기에 일곱 아들이 어머니의 행위를 비난하지 않고 편의를 제공하였다는 것은 굳어진 효의 관념을 부정하고 인간성을 긍정하였다는 면에서 설화 향유층의 공감을 얻을 수 있었다.
또한, 본능적 욕구가 강하였던 어머니는 다산(多産)과 풍요의 상징이 되는 존재라는 점에서 자식 없는 여인에게 수태를 가능하게 하고, 젖이 잘 나게 하는 등의 풍요를 가져오는 영험이 있다고 믿는 민중과 사랑에 굶주린 사람들에게 기원의 대상이 되었다. 이런 점에서 이 설화는 상층 사회의 윤리 강령보다는 평민의 삶의 원리가 반영된 자료라고 볼 수 있다. 즉, 어머니의 본능적 욕구를 윤리와 도덕률로 매도하지 않은데 진실이 숨어 있다.
자 이 설화를 현대적으로 본다면 이 여성은 반성할 필요가 있을까? 아마도 그럴 이유가 전형 없다고 많은 이들이 생각할 것이다.
또한 , 아들들이 어머니의 연애와 재혼에 대해 그것이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불효가 된다는 생각을 할까? 아마도 그렇지 않을 것이다.
과거의 어머니는 다산과 풍요의 상징으로 보든, 지금의 개념으로 행복을 추구하는 한 인간으로서 보던간에 이제는 이 여성은 극히 정당한 행위를 하는 것이고, 이러한 어머니를 위해 다리를 놓았던 아들들은 아무 문제도 없이 오히려 사회적 공헌과 가족의 행복과 개인의 만족을 이루는 올바른 일을 한 것이다.
이렇듯 이 설화에 숨어있던 "가부장적 개념"이라는 껍질을 벗겨내어 보았다.
시대가 흐르고 , 사회는 변화하고 그 속에서 사는 군상들의 생각도 요동친다. 바로 이 설화를 통해 우리는 그것을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상호 존중과 배려속에 양성이 바로서는 그날을 위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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