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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신바람 이선생] 미세먼지에 갇힌 한반도, 각가지 자구책 도모, 유난일까?

생사람 2019. 3. 6. 10:30

미세먼지에 갇힌 한반도, 각가지 자구책 도모, 유난일까?

프로파일 신바람 이선생 ・ 방금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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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독면, 코 마스크, 휴대용 공기청정기까지 챙겨

*각가지 음식, 화분까지 덩달아 불티

*'피 먼지족'이란 신조어까지 생길정도




미세먼지에 갇혀버린 심각한 한반도

한반도 집어삼킨 최악의 미세먼지가

바꾼 한국인 일상

불안을 견디다 못한 시민들이 자구책 마련에 나섰다. 미세먼지로부터의 완전한 도피를 지향하는 시민들. 이른바 '피(避)먼지족'의 등장이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미세먼지 농도부터 체크한다”는 회사원 황모씨(26)는 미세먼지 대처에 누구보다 적극적이다. 미세먼지 농도는 세계보건기준을 적용한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확인한다. 국내 미세먼지 기준이 너무 너그럽다는 이유에서다. 알코올 솜으로 외출 소지품도 꼼꼼히 닦는다. 침실에 미세먼지를 흡수한다는 식물을 들여놓기도 했다.

여섯 살배기 아이가 있는 주부 정모씨(33)는 “미세먼지 유입을 막기 위해서 창문을 여는 대신 공기청청기로 환기한다”고 설명했다. 정씨는 전쟁 시 피난용 물품을 저장해두듯, 미세먼지 차단용 마스크를 서랍에 한가득 구비해뒀다. 부득이한 외출 시 마스크 착용은 기본이고, 미세먼지 차단용 스프레이부터 꼼꼼히 뿌린다. 미세먼지 차단 기능이 있다는 방충망도 최근 설치했다. 또 미세먼지에 좋다고 알려진 음식으로 식단을 구성하거나, 영양제도 챙겨 먹는다.

미세먼지에 민감해진 시민들은 ‘바깥공기와의 단절’을 추구한다. 미세먼지를 피해 집을 나서지 않거나, 외출 시에는 동선을 실내로 한정한다. 미세먼지 농도가 '나쁨' 수준이었던 평일 오후, 서울 중구의 한 복합쇼핑몰을 찾았다. 쇼핑몰은 미세먼지를 피하려는 시민들로 북적였다. 내부 휴식 공간마다 사람들이 가득 차 빈자리를 찾기 어려웠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미세먼지 경보가 반복될 때마다 야외 상가나 시장, 노점상 등은 썰렁한 분위기를 면치 못하고 있다.

인천 시내 약국에는 미세먼지 차단 성능이 높은 마스크를 구매하려는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지역 맘카페 등 온라인상에는 성능 좋은 공기청정기 제품 공유한다. 한 누리꾼은 "진공청소기보다 물걸레를 사용하고, 외출 시 착용한 옷은 곧바로 세탁하거나, 베란다에 따로 보관해야 미세먼지 유입을 막을 수 있다고 한다"고 전했다.

한 회사원은 "마스크 착용시 화장이 지워져 회사에 와서 화장을 하다가 화장이 묻지 않는다는 미세먼지 마스크를 재구매했다"며 "화장법도 촉촉한 화장보다는 파우더를 사용해 보송보송한 화장을 해야 좋다는 말에 화장법도 바꿨다"고 설명했다.

왼쪽은 회사원 이승재 씨가 최근 산업용 방독면을 쓰고 출근하는 모습. 오른쪽은 경기 군포시의 한 헬스클럽에서는 남성이 미세먼지용 마스크를 착용한 채 운동을 하고 있다.

고깃집에서 한 남성이 휴대용 공기청정기를 옆에 둔 채 고기를 굽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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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독면 쓰고 출퇴근

5일 수도권과 충청권에 사상 처음으로 닷새 연속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발령되고 청정 지역이던 제주에서도 비상저감조치가 처음 내려지는 등 한반도가 미세먼지로 뒤덮이는 날이 잦아지면서 시민들은 자구책을 찾고 있다.


회사원 이승재 씨(31)는 미세먼지가 심한 날에는 산업용 방독면을 쓰고 출퇴근한다.

‘코 마스크’를 사용하는 직장인들도 있다.

주부 임미란 씨(45)는 휴대용 공기청정기를 직접 만들었다.지름 15cm에 높이 39cm로 조금 큰 편이지만 시중에 판매되는 휴대용 공기청정기보다 성능은 더 좋다. 임 씨는 고깃집처럼 연기가 많이 나고 환기가 잘되지 않는 장소나 자신이 다니는 문화센터처럼 공기청정기가 없는 곳에 갈 때면 휴대용 공기청정기를 꼭 챙긴다.

○ 미세먼지 자구책에 ‘유난 떤다’는 시선도

시민들은 여러 가지 자구책을 궁리하지만 이를 곱지 않게 보는 시선도 있다.

최근 직장을 그만둔 손모 씨(34·여)는 공기청정기가 없는 사무실에서 일했다. 손 씨는 어쩌다 마스크를 착용한 상태로 일을 할 때면 상사들로부터 ‘실내에서 유난스럽다’, ‘업무에 지장을 주지 않느냐’는 것. “오래 살려고 별짓을 다 한다”같은 싫은 소리를 들어야 했다.

미세먼지가 심한 날에는 산업용 방독면을 쓰고 외출하는 재수생 김정현 씨(19·여)는 길거리에서 자신에게 쏠리는 시선이 부담스럽다.

시민들의 민감한 반응은 미세먼지로부터의 안전을 보장받지 못하는 현실에서 비롯됐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미세먼지에 대한 시민들의 자력구제 시도에 대해 "안전은 생리적인 욕구와 함께 가장 우선적인 욕구에 속한다"며 "정부나 사회기관이 미세먼지의 악영향으로부터 지켜줄 수 있다는 믿음이 깨진 상태에서 무력감과 불안함이 자구책을 부추기는 것"이라고 봤다.

전문가들은 미세먼지에 대한 시민들의 이런 반응이 결코 유난스러운 것이 아니며 오히려 일부 기업과 행정기관이 ‘미세먼지 재난’에 안이하게 대처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공공장소에 공기청정기나 환기시설이 마련돼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미세먼지 문제에 개인적인 수준의 대처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올 수 밖에 없다. 김경남 서울대병원 환경의학과 교수는 “손을 놓고 있을 수 없는 시민 마음을 이해하지만, 미세먼지 대처 용품 같은 개인 차원의 방안은 과학적으로 효과가 입증되지 않은 것이 대다수”라며 “선진국에서는 구조적인 대응을 더 우선시한다. 관계 기관에서도 시민사회에 개인적인 노력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구조적인 차원에서 배출량을 줄이는 등의 실효성 있는 대책을 내놔야 한다”고 강조했다.

개인의 자구책에 기댈 것이 아니라 기업과 행정기관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