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3배' 태운 美산불, 뜻밖의 범인은 좁쌀만한 이놈이었다
이민정 입력 2021. 08. 14. 05:00 수정 2021. 08. 14. 07:02
2018년 11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북부의 뷰트카운티 파라다이스 지역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로 나무들이 불타고 있다. [AFP=연합뉴스]
0.15인치(4㎜).
미국 산림에 서식하는 딱정벌레의 몸길이다. 좁쌀 크기의 이 작은 곤충이 올여름 미국 서부를 강타한 산불의 숨겨진 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지난 8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과 온라인 매체 복스(VOX)는 딱정벌레 등 따뜻한 지역에 서식하던 곤충들이 지구온난화의 영향에 전역으로 퍼져나가 산불의 ‘시한폭탄’이 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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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파고드는 딱정벌레 '소나무좀'의 습격
미국 뉴욕 산림청의 크리스 스타이거월드는 매주 숲속을 돌며 소나무 상태를 관찰한다. 딱정벌레에 감염된 나무를 가려내기 위해서다. 나뭇가지와 잎이 하얗게 변했다면 그 안에 딱정벌레가 들끓고 있다는 의미다. 이 나무들은 전기톱으로 베어내야 한다. 썩은 나무를 빨리 잘라내지 않으면, 숲 전체가 위험해진다.
WSJ에 따르면 미국에 서식하는 딱정벌레는 600여종으로 이 가운데 12종 정도가 나무를 갉아먹는 해충으로 꼽힌다. 그중 가장 악명 높은 딱정벌레는 ‘소나무좀(pine beetle)’이다. 미 남동부, 멕시코, 중앙아메리카에서 주로 발견되던 소나무좀은 2014년 뉴욕주 롱아일랜드에서 급속도로 퍼져나가더니 북부 산림을 위협하는 존재가 됐다.
2010년 미 서부 캘리포니아 고지대의 800년 된 나무가 딱정벌레 소나무좀에 감염돼 고사했다. [AP=연합뉴스]
소나무좀의 주요 먹잇감은 소나무와 잣나무다. 이 딱정벌레는 나무껍질을 벗기고, 구멍을 내 파고들어 간 뒤 알을 낳아 번식한다. 나무도 수액을 내보내 대항한다. 하지만 소나무좀의 공세가 워낙 강해 당해낼 재간이 없다. 공격을 받은 나무는 1년 사이 수분 80~90%를 잃고 말라죽고 만다. 뉴욕주의 경우 소나무좀이 등장한 지 7년 만에 소나무 1만 그루가 잘려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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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온난화가 키운 시한폭탄, 미 산림·생태계 위협
지구온난화는 소나무좀 같은 딱정벌레가 세력을 키우는 데 길을 터줬다. 따뜻해진 기온은 딱정벌레의 번식 속도에 불을 붙였다. 딱정벌레 알이 성체가 되어 다시 알을 낳기까지 2년 걸리는데, 최근에는 1년으로 짧아졌다. 자연스레 딱정벌레 개체 수도 두 배로 늘어났고, 고지대까지 점령했다. 딱정벌레의 존재를 몰랐던 고지대 나무들은 무방비 상태에서 기습 공격을 당한 상태다.
여기에 지구온난화가 부른 또 다른 악재, 가뭄과 폭염이 덮치며 악순환이 시작됐다. 딱정벌레에 감염돼 말라 죽은 나무가 가뭄과 폭염이 만든 산불과 만나 주원료가 되면서다.
2011년 8월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지역 산림 중 딱정벌레에 감염돼 하얗게 말라죽은 나무들(왼쪽)이 푸른색 나무들과 비교된다. [AP=연합뉴스]
기상학자 맷 자피노는 지난 7월 산불에 휩싸인 서부 오리건주도 딱정벌레에 당한 셈이라고 주장했다. 오리건주는 2주 이상 계속된 산불로 서울 면적(605.2㎢) 3배가 사라졌다. 자피노는 “가뭄과 폭염이 길어지면서 나무가 수액 생산을 줄였고, 그 틈에 딱정벌레들은 개체 수를 늘렸다”면서 “딱정벌레에 감염돼 말라 죽은 나무들이 산불을 키웠다”고 설명했다.
이런 주장은 2015년 캘리포니아 산림 15만 에이커(607㎢)를 태운 ‘러프 파이어’부터 시작돼 매해 미 산불 자연재해 연구에서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지난해 17만 에이커(687㎢)를 태운 캘리포니아 시에라 네바다 산맥 산불 때도 불탄 목재 90%가 딱정벌레에 의해 죽은 것이었다고 소방 관계자들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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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고사율 높아…대형 산불 더 잦을 것”
올 여름 미국 캘리포니아주 플러마스 카운티에서 발생한 딕시 산불 현장에서 한 소방관이 완전 진화를 확인하고 있다. 딕시 산불은 캘리포니아 역사상 가장 큰 산불로 기록됐다. [EPA=연합뉴스]
전문가들은 이런 대형 산불이 앞으로 더 잦아질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딱정벌레에 감염돼 서서히 말라가는 나무의 비율이 점점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 산림청 소속 곤충학자 크리스 페티그는 “이미 2018년 보고서에서 나무의 고사율에 근거해 대형 산불을 경고했었다”며 “불과 3년 만에 우려가 현실이 됐다”고 말했다. 특히 대형 산불로 숲이 사라지면서 온난화로 인한 기후 변화가 심화되는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그렇다면, 악순환의 연결 고리를 끊을 순 없는 걸까. 아이러니하게도 딱정벌레를 박멸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으로 꼽히는 게 ‘산불’이라고 한다. 미국 산림청의 연구생태학자 샤론 후드는 “전문가들은 산불 관리와 해충 관리를 위해 통제된 상황에서 산불 놓기를 효과적인 방법으로 추천한다”면서 “소규모 산불의 경우 직접적 피해가 없는 한 확산을 막는 정도로 대처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이에 반대하는 측은 산불이 이산화탄소를 대량으로 발생시키는 동시에 이를 흡수할 숲을 태워 전 지구적 온난화를 가속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결국 산불은 최대한 조기 진압하고, 딱정벌레는 농약 등으로 확산을 막아야 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이민정 기자·장민순 리서처 lee.minjung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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