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형 ㈔동아시아평화문제연구소 소장
크림(Krym, 영어 Crimea)반도가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흑해와 아조프해 사이에 있는 크림반도는 13~18세기 타타르제국(오스만제국에 복속)에 속해 있었으나 18세기 러시아-투르크 전쟁에서 러시아가 승리하면서 1783년 러시아에 귀속됐다. 제2차 세계대전 말기인 1941~1942년에는 이곳에서 소련군과 독일 나치군이 격돌했다. 이후 1944년 히틀러로부터 크림을 되찾은 스탈린은 나치에 협력했다는 이유로 크림거주 타타르족 약 20만명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켰는데, 이때 절반 정도가 기아나 질병으로 사망했다. 그 후 1954년 친(親)우크라이나 성향의 흐루쇼프 소련공산당 서기장의 지시로 크림반도는 우크라이나로 편입됐다.
1991년 소비에트연방의 해체로 우크라이나가 독립했다. 우크라이나는 원래 우크라이나계가 거주하는 서부지역(친서방)과 러시아계인 동부지역, 그리고 크림자치공화국(친러)으로 구성돼 있었다. 그런데 2014년 3월 크림자치공화국의 친러 군인들이 주동이 되어 친서방정책을 취한 우크라이나 정부에 반발해 크림공화국으로의 독립을 선언하고, 이어 러시아에 합병하기 위해 국민투표를 실시, 이를 통과시켜 러시아의 한 행정구역으로 합병됐다. 반도의 인구는 약 230만명으로, 인종별로는 러시아계 60%, 우크라이나계 24%, 타타르계 13% 등이다.
금년 11월 25일 러시아 해안경비대는 러시아 본토와 크림반도 사이의 케르치해협을 통과하던 우크라이나 함정 3척과 승조원 24명을 나포했다. 사건 직후 러시아 당국은 우크라이나 함정이 사전 통보 없이 러시아 영해를 침범한 것에 대한 합법적인 조치라고 주장했고, 우크라이나 해군은 러시아 측에 미리 알리고 항해했지만 무력공격을 당했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러시아의 이번 도발의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다른 데 있다는 분석도 있다. 우크라이나가 자국의 해군기지 ‘마리우폴’ 바로 옆에 미국과 나토의 지원을 받아 ‘베르단스크’ 해군기지를 현재 건설 중인데, 러시아는 장차 이 기지에 나토군이 주둔할 수도 있다고 우려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금년의 충돌은 지난 2014년 크림반도를 강제로 병합한 러시아가 흑해 및 케르치해협에 대한 자국의 독점적 영해권 주장을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 사건 후 우크라이나 포로셴코 대통령은 러시아와 인접한 국경지대에 30일간 계엄령을 선포했다. 그러나 러시아는 포로셴코가 내년 3월 예정된 대선을 앞두고 대통령 후보 여론조사에서 경쟁자인 티모셴코 전 총리에게 크게 뒤져 2위에 머물고 있기 때문에 계엄령 카드를 꺼내든 것이라고 음모론을 제기한 바 있다.
러시아가 2014년 크림반도를 합병한 것이나, 금년에 우크라이나 해군 함정을 나포하고 수병 3명을 재판에 회부한 것은 모두 강대국이 주변의 약소국을 위협하고 순식간에 점령해버린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이번 사태 후 미국, EU, 유엔 등이 러시아의 도발을 규탄하고, 2014년도 크림합병 후 러시아에 부과했던 제재를 한 단계 더 강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러시아는 국제사회의 이러한 비난에 대해 크림반도 사태를 불법이 아닌 고토회복으로 보고 있다. 한 나라가 주변 강국으로부터 침략을 받으면 우방이나 유엔이 회복시켜줄 수 있다는 안일한 생각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냉혹한 국제정치의 소용돌이 속에서 어떤 국가든 자국의 국가안보가 최우선시 돼야 할 이유인 것이다.
우크라이나에 속해 있지만 자치공화국 지위를 가진 크림반도는 지역적ㆍ역사적 특징으로 역내 화약고로 꼽힙니다.
우크라이나 남쪽 끝에 있는 크림반도는 흑해에 접해 있고 비옥한 농토를 지닌 곳으로, 지정학적으로 러시아 등 주변국들이 중시해온 곳입니다.
수백년간 러시아 땅이던 이곳은 소련 시절인 1954년 우크라이나에 속하게 됐습니다.
1991년 소련 붕괴 후에 이 지역에서는 우크라이나에 남느냐 아니면 러시아와 합병하느냐를 놓고 논란이 일었습니다.
하지만 투표를 통해 우크라이나에 속하기로 결정했고 우크라이나 중앙정부는 자치공화국의 지위를 부여했습니다.
지중해와 연결되는 흑해를 끼고 있고 터키를 마주하고 있다는 지정학적 이점탓에 19세기 중반 러시아 제국과 오스만 제국간 크림전쟁의 무대가 되기도 했습니다.
'백의의 천사'로 불리는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이 활약한 무대이기도 합니다.
러시아는 크림반도 남부 항구도시인 세바스토폴에 230년간 자국 흑해함대를 주둔시켜왔습니다.
사실상 망명상태인 친러시아계, 빅토르 야누코비치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흑해함대의 주둔기한을 2042년까지 연장시킨 상태입니다.
인구분포 역시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이 된 것으로 분석됩니다.
크림반도는 주민 가운데 60%가 러시아계로, 남부에 몰려 삽니다.
북부에는 우크라이나계가 많고 중부에는 타타르인이 주로 거주합니다.
이 때문에 최근 친 유럽계가 우크라이나 중앙 정부를 장악하자 크림반도의 러시아계는 러시아와 합치자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계와 타타르인은 이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특히 옛 소련시절 탄압받은 타타르계는 러시아와 합병할 경우 무장투쟁까지 예고하는 등 반발이 상당합니다.
크림반도는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에 연합국 정상들이 모여 전후 처리방안 등을 논의한 '얄타회담'이 열린 곳이기도 합니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일촉즉발로 치달으면서 제2의 얄타회담 가능성이 거론되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