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드루킹- 경공모 , 노회찬은 작업에 걸려 든 것인가? 그의 선택에 관한 의문점들.

생사람 2018. 7. 26. 09:02

[팩트체크] "어리석은 선택"..노회찬은 왜 그랬을까?

유동주 기자 입력 2018.07.26. 04:00 수정 2018.07.26. 08:43 
[the L] 경공모 등 '단체' 자금 기부는 불법..개인 후원 전환해 영수증 처리하는 방법 있지만 안해
노회찬 의원 20대 충선 출마시 선거사무소 개소식 알림. 경공모의 현금 전달은 개소식 전후 시점인 것으로 현재까지 알려져 있다. /출처=노회찬 의원 블로그


지난 23일 세상을 떠난 고(故)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는 유서를 통해 '경제적공진화모임'(경공모)으로부터 돈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유서에서 노 의원은 "2016년 3월 두 차례에 걸쳐 경공모로부터 모두 4000만원을 받았다. 어떤 청탁도 없었고 대가를 약속한 바도 없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다수 회원들의 자발적 모금이었기에 마땅히 정상적인 후원절차를 밟아야 했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 참으로 어리석은 선택이었으며 부끄러운 판단이었다"고 썼다.

만약 노 의원이 '정상적인 후원절차'를 거쳤다면 노 의원은 허익범 특별검사팀의 수사를 걱정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노 의원은 왜 그런 절차를 밟지 않았을까?

◇20대 총선 '예비후보' 등록 후 전달된 '정치자금' 4000만원

특검 수사와 노 의원의 유서를 통해 밝혀진 바에 따르면 경공모 측은 두 차례에 걸쳐 노 의원 측에 약 4000만원을 건넸다. 경공모 계좌에서 인출돼 현금으로 전달된 이 돈은 법적으로 ‘정치자금’에 해당한다.
정치자금법 제3조는 정치자금의 종류를 규정하고 있다. 제3조 제1호 바목엔 “공직선거법에 따른 후보자가 되려는 사람, 후보자, 정당간부 등에게 제공되는 금전이나 유가증권 또는 물건"이 모두 ’정치자금‘에 해당한다고 돼 있다.

노 의원은 정당 간부이면서 공직 후보자로 계속 출마했던 '직업 정치인'이다. 따라서 그가 현역 국회의원이던 시절은 물론 대법원의 '삼성 X파일 사건' 유죄 확정으로 의원직을 상실한 시기를 포함해 언제든 타인(민법상 친족제외)이 그에게 돈을 건넨다면 '정치자금'이 된다.

이 '정치자금'은 정치자금법(정자법)에서 허용한 방법으로만 주고받아야 '적법'하다. 일각에선 이 돈을 두고 '후원금'이란 표현을 쓰기도 하지만, 법적 의미에선 틀린 말이다. ‘후원금’은 정자법 규정에 의해 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된 ‘후원회’에 기부되는 금전, 유가증권 등을 말한다. 따라서 후원회를 통하지 않고 노 의원에게 전달된 돈을 ‘후원금’이라 부르는 것은 법적으론 맞지 않다. '후원금'이 되려면 노 의원이 선관위에 등록한 후원회 계좌에 입금되는 식으로 공식 절차를 거쳤어야 한다.

금품이 전달된 2016년 3월, 노 의원은 제20대 총선에 출마하기 위해 이미 예비후보자로 등록한 상태였다. 머니투데이 '더엘'(the L)이 지역구인 경상남도 창원시 성산구 선거관리위원회에 확인한 바에 따르면 그가 예비후보로 등록한 시점은 2016년 2월2일, 후원회 개설 등록은 사흘 뒤 2월5일이다.

노 의원이 유서에 쓴 내용이 진술이라는 가정 아래 2016년 3월 전달된 4000만원은 그 이전 2월5일 이미 개설된 후원회 계좌에 개인 후원금 형태로 나눠 입금됐으면 적법한 정치후원금이 된다. 영수증 처리도 가능하다.


◇후원회 계좌 있는데도 현금 들고 온 경공모

그렇다면 유서에서 밝힌대로 노 의원이 ‘정상적인 후원절차‘를 밟지 않은 이유는 뭘까? 가능성은 3가지다.

첫째, 경공모 측이 의도적으로 '불법'을 저지른 경우다. 약점을 잡아 두기 위해 정치인과 일부러 금품을 주고 받았다는 거다. 정치권에선 종종 있는 일이다. 공직 선거후보자의 경우엔 정치활동에 관련된 금품을 정자법 테두리 밖에서 주고 받으면 엄격한 공직선거법과 정자법에 의해 사법처리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후보자는 상대방이 선의든 악의든 현금을 정치자금으로 건넬 의사를 보일 때, 불법을 피해가려면 후원회를 통해 받는 방법 밖에 없다. 그런데 후원회를 통하지 않았기 때문에 경공모 측 의도가 어찌됐든 결과적으로 불법이 됐다.

둘째, 돈의 성격을 오판한 경우다. 유서엔 "나중에 알았지만, 다수 회원들의 자발적 모금…"이라고 적혀 있다. 처음엔 돈의 성격을 다르게 알고 있었다는 뜻으로 읽힌다. 노 의원이 처음 돈을 전달받을 때, 모금을 통한 단체 자금이 아니라 개인이 건넨 것으로 잘못 알았을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이 경우 개인 후원한도인 500만원을 넘기 때문에 후원회를 통한 적법 절차가 불가능하다. 이 경우엔 '차용증'을 쓰고 빌리는 수 밖에 없다. 후원회 영수증 처리가 불가능한 상황이거나 후원회를 통하지 못할 다른 사정이 있고 선거자금이 꼭 필요한 경우, 빌려 쓸 수 있지만 노 의원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나중에야 자금의 성격이 단체 모금임을 알았다면 개인 후원금 영수증 처리를 하는 방식으로 '적법화'를 해야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노 의원이 돈의 출처를 경기고 동기인 도 변호사의 개인 자금으로 착각했을 가능성도 있다. 도 변호사나 어떤 특정 개인이 대가없이 후원하지만 개인 사정상 영수증 처리는 원치 않는 ‘정치자금’으로 알았을 수도 있다. 경공모 측이 일부러 노 의원에게 돈의 출처를 ‘개인 돈’으로 알렸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셋째, 정상적 후원절차를 나중에야 밟으려 했지만 불가능했을 수 있다. 노 의원이 출처를 나중에야 알고 바로 잡으려 했어도 ‘불법’을 ‘적법’으로 돌리기 쉽지는 않은 상황이었다.

우선 경공모 회원들 모금에 의해 조성된 돈을 '단체' 계좌에서 일괄 인출해 전달한 것 자체가 문제다. 정자법은 법인·단체의 정치자금 기부를 '불법'으로 본다. 오직 '개인'만 가능하다. 따라서 경공모 관련 계좌에서 출금돼 전달된 돈은 그대로 전달되면 불법수수가 될 수 밖에 없다.

이를 적법화하려면 바로 돌려준 뒤, 경공모 회원 각자가 개인 후원을 하는 방식을 권했어야 한다. 단체가 준 돈을 일명 '쪼개기'해도 불법이다. 대표적 사례인 전국청원경찰친목협의회(청목회) 사건도 단체가 입법로비를 목적으로 회원 명의를 이용해 돈을 나눠 후원한 것이었다. 이 방법은 법원에서 불법으로 결론났다.

만약 노 의원이 경공모의 후원 의사를 받아들이면서도 적법하게 받을 생각이었다면, 들고 온 현금은 돌려보낸 뒤 회원 각자 개인 후원으로 해 달라고 요구했어야 한다.

한편 경공모는 김경수 경남지사가 국회의원에 당선된 2016년 4월 총선 직후 회원들에게 개인 후원 독려를 했다. 노 의원에게 한 것처럼 경공모 단체 계좌에서 돈을 인출해 현금을 들고 가 전달하는 ‘불법’을 저지르지 않았다.

이에 비춰보면 경공모가 노 의원에게 돈을 전달하면서 ‘불법’을 저지른 배경에는 다른 의도가 있었을 수 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돈을 전달한 뒤 1년여 지난 2017년 5월, 드루킹은 직접 트위터를 통해 노 의원 등 정의당 정치인들을 협박하는 듯한 내용의 글을 올린 바 있다.

정치인은 부정한 돈을 받는 순간 '을'이 되고, 준 사람이 '갑'이 된다. 진실은 특검 수사에서 밝혀질 일이다. 노 의원의 명복을 빈다.

드루킹이 트위터에 2017년 5월 올린 내용/출처=SNS 캡쳐

유동주 기자 lawmaker@m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