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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은 무역전쟁, 속은 패권전쟁. 끝을 봐야 끝이 난다. 미 중국의 '첨단산업 2025' 프로젝트 선제타격

생사람 2018. 7. 7. 08:55

트럼프, 시진핑의 '첨단산업 2025' 프로젝트 선제타격

뉴욕/김덕한 특파원 입력 2018.07.07. 03:05 
[美·中 무역전쟁 돌입] 
겉은 무역전쟁, 속은 세계패권 경쟁.. 시진핑도 물러설 수 없어

미국과 중국이 6일 680억달러(약 76조원) 규모의 양국 교역품에 25%의 고율 관세 부과를 시작하면서 사상 초유의 세계 양강 무역 전쟁이 현실화됐다. 미·중은 최대 5000억달러에 달하는 천문학적 규모의 추가 보복까지 경고하면서 한 치의 양보도 없는 형국이다.

양국의 무역 전쟁이 쉽게 타협되기 어려운 이유는 이번 대결이 '무역 전쟁'이라는 외투를 걸치고 있지만 내면의 실상은 세계 패권을 차지하기 위한 정치 전쟁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이날 중국산 통신 장비, 철도 장비, 항공·부품, 기계 등 818개 품목에 25% 고율 관세를 부과하기 시작했고, 2주 내에 반도체·장비, 전기차, 배터리 등 284개 품목을 추가하겠다고 밝혔다. 이 품목들은 대부분 중국 정부의 10대 첨단산업 육성 프로젝트인 '중국제조 2025'와 관련된 제품들이다.

미국이 내세우는 무역 보복 명분은 우선 엄청난 무역 적자다. 중국 측 통계로도 중국은 지난해 전체 무역 흑자의 65.3%에 달하는 2758억달러의 흑자를 미국과의 무역에서 거둬들였다. 미국 정부는 특히 정보기술(IT) 분야 대중(對中) 무역 적자가 2002년 148억달러에서 지난해 1510억달러로 10배 이상 늘어나는 등 첨단 분야에서 중국이 '반칙'을 통해 급성장하고 있다는 점을 문제 삼고 있다. 중국에 진출하는 외국 기업은 반드시 중국 기업과 합작하도록 장벽을 친 후 이 합작 기업을 통해 기술을 탈취하고, 중국 정부의 용인하에 미국 등 외국 기업의 지식재산권을 침해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고율 관세 부과를 통한 무역 전쟁은 여당인 공화당에서조차 반대 의견이 있지만, 중국의 지식재산권 도용과 기술 탈취 문제에서는 공화당은 물론이고 야당인 민주당으로부터도 확고한 지지를 받고 있다. 미국 조야는 중국이 기술 도둑질 등 반칙으로 인공지능(AI)·빅데이터·로봇·우주 기술 등 군사 분야 경쟁력과 직결된 첨단산업 분야에서 미국을 넘어 세계 1위에 오르는 것을 결코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중국 정부가 추구하는 기술 굴기(崛起)가 결국은 군사력·경제력, 나아가 총체적 국력의 핵심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중국 입장에서는 그렇기 때문에 더 물러서기 어렵다. 무역 전쟁에서 밀리는 것은 경제뿐 아니라 정치·군사적 차원에서도 세계 리더 자리를 포기하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중국 내에서는 이번 무역 전쟁이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리더십에 대한 가장 강력한 도전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중국 상무부가 미국의 관세 부과 조치 직후 낸 보복 조치를 설명하며 강조한 것도 "국가의 핵심 이익을 수호하기 위해서"라는 것이었다. 이 문제가 단순히 무역 분쟁이 아니라 국가의 핵심 이익이 걸린 문제로 본다는 뜻이다. 중국이 보복 대상으로 삼은 것이 트럼프 대통령의 표밭인 중서부 팜 벨트(농업지대)와 러스트 벨트(낙후한 공업지대)에서 생산되는 대두·돼지고기 등 농산물과 자동차 등 545개 품목인 것은 미국의 정치적 취약점을 파고들겠다는 전략이다.

지난해 중국의 대미(對美) 수출액은 4298억달러에 달하는 반면, 미국의 대중(對中) 수출액은 1539억달러 수준에 그쳐 무역 전쟁의 '무기'는 중국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중국은 양적 수단뿐 아니라 질적 수단, 즉 비관세 장벽을 통한 보복 카드로 맞서겠다는 뜻을 시사했다. 중국은 이미 미국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을 상대로 중국 내 판매 금지 예비 명령을 내렸다. 미국산 과일이나 자동차의 통관 대기 시간을 늦추거나 중국 관광객들의 미국행 관광을 제한하는 등의 보복도 거론된다. 중국은 "미국의 일방주의에 맞서 연대하자"며 EU(유럽연합)를 압박하고, 한국·인도 등 5개국에서 수입하는 농산물 관세율을 낮추는 등 미국의 무역 보복 위협을 받고 있는 국제사회의 '항미(抗美) 연대'를 꾸리려는 전략도 쓰고 있다.

새로 부상하는 세력이 기존 지배 세력의 자리를 빼앗으려고 위협해 올 때 극심한 긴장이 발생하고 전쟁이 일어난다는 '투키디데스 함정'에 미·중이 빠져들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쟁이 끝날 때까지 어느 쪽도 물러서기 어려운 구조라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날 주펑 난징대 국제관계연구원 원장, 데이비드 달러 브루킹스 연구소 선임 연구원 등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해 미국이 당장 무역 전쟁으로 인한 경제적 압박이 크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내년까지 양국 무역 전쟁이 이어질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