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숲
- 故 신영복 선생님 영전에
당신은 고요입니다
나무가 소리내지 않고 나이테를 키우듯
사색이 소리내지 않고 마음을 키우듯
당신의 고요는 당신에게만 있지 않고
우리 아이들의 책상에서
가만히 책장 넘기는 소리처럼
아주 조심스럽게 귀기울여야 알 수 있는 고요
자꾸 자라나는 고요입니다
당신은 미소입니다
거미줄에 매달려 아침이슬이 흔들리듯
나뭇잎에 매달려 아침햇살이 흔들리듯
당신의 미소는 당신에게만 있지 않고
우리 아이들의 운동장에서
넘어진 친구의 손을 잡는 것 처럼
따라 웃어보아야 알 수 있는 미소
서로의 마음을 흔드는 미소입니다
당신은 묵은 나뭇잎입니다
숲의 가장 낮은 곳에서 땅과 볼을 맞댄듯
무릎 꿇고, 엎드려 우는 사람들과 볼을 맞댄듯
묵은 나뭇잎은 당신에게만 있지 않고
우리 아이들의 마음속에서
가깝고 먼 그리움이 생기는 것 처럼
마음의 가지가 자라나야 알 수 있는 더불어숲
저 아래에서 찬 땅을 덮고 있습니다.